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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6-09-13 00:29
성경 속의 어려운 이야기 1: “사람의 거짓말과 하나님의 틈입” / 김세권 목사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5,284  

창세기를 묵상하면서 깊이 읽다가, 37장에서 멈춰 섰다. 맨 끝절에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아먹은 이야기가 시선을 끈 까닭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려면, 창 38장에 당연히 그 다음 사연이 소개 되어야 할텐데, 엉뚱하게도 유다 이야기가 대신 등장한다. 그리고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는 이야기는 39장에 가서야 찾아볼 수 있다. 왜 순서가 이렇게 되었을까. 과연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끊어진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는 합당한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 문제를 살펴 봄에 있어서 성경을 하나의 ‘이야기’(narrative)로 읽는 ‘알터’(R. Alter)의 방법을 한 번 빌려보자. 창세기 전체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모티브(motif) 가운데 하나는 '거짓말'이다. 아주 크게 이야기 하자면, 인간은 삶 속에서 거짓말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그 거짓을 바로잡는 분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 가면, 역사를 뚫고 들어 오셔서(divine intervention / 거룩한 틈입) 인생을 고쳐주신다. 이런 관점으로 창세기 37장부터 39장을 읽으면 해결의 길이 보인다.

이야기를 하려면 야곱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거짓으로 점철 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합작해서 형인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보기 좋게 속였다. 밧단아람으로 가서도 라반이 품삯을 주지 않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자신의 소유가 될 양들의 수효를 불린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 가족과 함께 거기서 도망쳐 나와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도 라반을 속인다. 드라빔과 관계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지 않은가. 이런 야곱이 일생을 통해서 진지했던 대상이 하나 있다. 바로 라헬이었다. 꾀쟁이 야곱이 진지해지자, 이번에는 그걸 라반이 이용해 먹는다. 말하자면 라반은 야곱을 속여서 레아까지 시집 보내고, 야곱의 노동력을 무임금으로 자그마치 십 사년 동안이나 사용하는 파렴치한 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이제 시나브로 시간이 흘러서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다. 그 중에 요셉이 있었다. 그는 자질은 좋았지만, 성격이 좀 그랬다. 요셉은 대단히 윤리적이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훌륭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그런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좀 까다롭고 모난 데가 있었다 싶다. 그러니 인간적인 매력이 약간 떨어졌다. 사내 아이들은 자라면서 일탈도 하고 속도 썩인다. 그런데 범생이 요셉은 형들이 이럴 때마다 그들의 비위 사실을 부모에게 일러 바친다. 결국 요셉은 형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되고, 마침내 부모의 편애와 자신의 잘난 척이 합쳐져서 형제들의 미움을 샀다. 그리고 종래에는 이집트로 팔려가게 된다. 이 와중에서 야곱은 결정적으로 자신이 낳은 아들들에게 왕창 속는다.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는 소식에 그만 넋이 나가 버린다. 그리고 ‘스올’에 내려갈 생각까지 할 정도에 이른다. 세상에나, 아들들에게 혼이 거의 나갈 정도로 속은 것이다.

그렇다면, 요셉을 죽이지 않고 상인들에게 팔면서, 아버지를 속이는 일에 가장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야곱의 아들 유다였다. 그는 희대의 천재인 아버지 야곱 위에서 놀면서 그를 멋들어지게 속이는 사람으로 창세기의 전면에 등장한다. 여기서 37장이 끝난다. 자, 그리고 나서 이제 38장이다. 창 38장은 아버지를 속이는데 앞장 섰던 유다가 거꾸로 대판 속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며느리 다말과 관련해서, 엄청난 망신을 당하면서 그녀에게 속은 것이다. 다말은 시아버지가 자신에게 약속한 대로 이행하지 않자, 유다를 속여서 남편 집안의 대를 잇는다. 그러나 결코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이른 바 또 속임수가 등장한 것이다. 거짓이 또 다른 거짓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이렇게 보면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요셉으로부터 유다로 넘어간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창 38장은 결코 돌출적인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 내부의 힘이 여러 에피소드(episode)를 흡입해서 하나의 큰 이야기(narrative) 를 만들어낸 것으로 봐야 한다. 이른 바 속임수로 서로가 물고, 물리는 거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제 39장으로 넘어가서, 요셉의 이집트 일대기를 그린다. 요셉은 그 때까지는 타인을 속이지 않았다. 정직한 사람이었던 그는 오히려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호되게 고생하는데, 가나안에서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를 거짓으로 고발한 보디발의 아내라든가, 은혜를 잊어버린 술 맡은 관원장 같은 사람들의 존재는 정말 요셉에게 악몽이었다. 그래도 요셉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그런 그의 수준있는 정직함은 딱 거기까지 만이다. 재미있는 것은 형들과 재회하는 과정에서 요셉 역시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이다. 그도 형들을 속이는 사람이 되었다. 좀 그렇다. 이야기는 한 단락씩 정리되고 끊어지는데, 인간의 거짓말은 끝이 없다.

이렇게 보면 창세기는 그 깊은 곳에 사람들의 거짓말이 만든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역사의 흐름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사람의 삶 안으로 뚫고 들어와서 그것을 만지신다. 그리고 고치신다. 그래서 역사가 제대로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실수와 하나님의 고침이 만나서 창세기가 완성되었다면 어떨까. 결론을 내리자면, 창 38장은 이야기가 깨어진 부분이거나, 편집자의 무모한 실수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단순히 겉의 흐름으로 보자면 그럴 수도 있지만, '거짓말'이라는 모티브(motif) 를 의식하면서 들여다 보면, 이야기가 너무나 매끄럽게 흘러간다. 그러니 창 37장에서 시작된 요셉 이야기가 39장으로 건너 뛰었다고 볼 수는 없다. 창 38장은 인간의 삶 저 밑에서 요동치는 거짓이라는 동인을 기초로 해서 전체 이야기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연속성 있는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이래 저래, 성경 이야기는 간단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싶다. 어떤가, 이제는 궁금증이 조금 풀릴 수 있으면 좋겠다.


글쓴이 : 김세권 목사 / 한국의 장로회 신학대학과 미국의 Hebrew Union College 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달라스에서 조이풀 교회(www.joyfulkcc.com)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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